


지진의 폐허 속 남겨진 이들 돕는 손길이 있다
지진 현장의 일본 교회 재난 당한 성도와 아픔을 나누는 그들을 찾다
조영상 /CCC 파송·사랑의교회 협력 선교사
대재난을 당한 일본 교회 그리고 일본인들과 어떻게든 아픔을 함께 나누려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한국 교회의 지원으로 가장 어려움에 있던 4개 교회와 한 곳의 복지시설에 한국 교회가 전한 아가페의 사랑을 전하고 돌아오게 된 것을 감사드린다. 2박3일간 일본인 성도들과 함께 나눈 고통의 짧은 체험은 값지고 값진,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쁨과 보람이었다.
지진 현장 그 곳을 가다/ 모두가 떠났지만 “그곳을 찾아가리라”
피난 떠나지 못한 성도들 찾아가 위로하고 아픔 나누기도
지난 15일(화) 일본 목사님으로부터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주변 도시의 교회가 피난을 가지 못한 성도들과 주민들을 돌보고 있으며, 급히 피난을 간 성도들의 피난 처소가 몹시 불편한 상황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 어떻게든 그 분들을 찾아가 격려하기로 결정하고 준비를 시작했다.
17일(목) 동경에서도 물건을 구입하기 어려운 상황이기에, 새벽 4시부터 변두리 도시인 가사이에 있는 도매시장을 찾아 물건을 구입하려 했다. 그러나 도매시장도 물건이 유통이 되지 않아 적은 수량의 구호품을 구입했으며, 다른 상점들을 돌고 돌아 재해 지역의 성도들이 꼭 필요로 하는 생활필수품을 모으는 일이 오후 5시께에야 겨우 끝이 났다. 현재 동경은 주민 한 사람당 물병 한 개, 휴지도 한 통만 구입할 수 있는 등의 제한이 있다.
자동차 기름을 구할 수가 없는 장벽에 부딪쳤다. 가솔린이 없으니 장거리 여행은 불가능하여, 동경을 조금 벗어난 사이타마의 요시가와 신학교 기숙사에 밤 12시에 도착하여 겨우 잠자리를 정하게 됐다.
18일(금). 새벽기도를 은혜롭게 드리고, 신학생들과 맛있는 조식을 한 뒤 교회에서 지원해 준 등유와 쌀을 가지고서 더욱 힘을 내어 재난지로 향했다. 주유소들은 탱크로리가 언제 기름을 채워줄지 모른다며 거의 문을 닫고 있었고, 한두 군데 열린 곳은 아침 일찍부터 장사진을 이루어 주유를 하는 것조차 너무 힘들었다. 한 사람당 2000엔(14리터 정도) 어치씩만 파는 주유소를 찾는 것도 어렵거니와 주유소를 찾아가 100여 대의 줄을 기다려 주유를 해야 하는 불편함 속에서 6번의 주유를 하면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방사선 누출 위험 지역인 소마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미토’라는 도시부터는 고속도로가 심하게 파손돼 있었고, 정부기관의 공사·소방·복구 차량만이 통행이 허가되어 우리는 민간인으로서 특별한 통행의 허락을 받아 가장 도움이 절실한 교회에 도착하게 됐다.
지진 현장 그 곳을 가다/ 당신들은 “고마운 동역자”
인적 없는 도시 속 두려움에 떨고 있는 피난민들 감격의 해후
소마시에 있는 소마그리스도복음교회(고토 이치고 목사)에서는 20여 명이 피난생활을 하고 있었다. 노령자, 피난할 곳을 찾지 못한 유소년, 성도, 주민들이 물도 없이 음식의 공급도 받을 수 없는 상태에서 우리들의 방문과 구호품 전달에 한없는 기쁨을 표현했다.
우리도 평소에 못 먹는 비싼 사과 한 박스를 드렸더니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대환호성이었다. 소마시는 원자력 발전소에서 북으로 30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도시로 전 도시가 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 방사선 누출이라는 3중고를 겪고 있었다. 인구 4만 명 도시이지만 모든 상가는 폐쇄되고 주민들이 모두 피난을 간 상황에서 마치 유령 도시 같았다. 이곳에서는 피난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분들이 교회당에 모여, 목사님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며 공동생활을 하고 계셨다. 이곳저곳에서 오신 분들은 당분간은 안심이 된다고 했으나, 보다 안전한 곳을 찾고 있는 모습이었다.
미나미 소마시의 하라마치 그리스도복음교회(담임 가나리 다카노리 목사) 성도들은 원전으로 부터 60여km 밖에 있는 시온의 언덕이란 캠프장에서 힘겹게 생활하고 있을 거라는 말을 듣고 즉시 그곳으로 이동했다. 현청이 있는 후쿠시마시를 지나 산골짜기 스가카와시의 피난지를 찾아간 것은 밤 12시였다.
19일(토) 새벽2시, 4시, 5시께에도 산속 캠프장에 3번이나 큰 여진이 있어 새벽잠을 설쳤다. 이들이 피난해 있는 곳은 과거 110여 년 전, 노르웨이 출신의 얼라이언스미션 선교사들이 신학교로 운영하던 교실과 채플이었다. 가나리 다카노리 목사님이 자기들보다 더 어려운 곳에 도움을 달라고 요청했고, 나고소 복음의협회(기독교 종합복지시설)에 필요한 물품(노인들에게 절실한 물과 소도구들)을 전해 드리고 한국 교회의 작은 사랑을 전할 수가 있어서 감사했다.
긍휼의 사역
어느덧 기름도 거의 떨어지고 주유할 길은 더더욱 불가능해진 가운데, 꼭 가야 하는 두 곳을 들러 돌아가기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는 기름을 주십시오! 길을 열어 주십시오!라는 기도의 외침이 반복됐다. 믿음으로 고속도로를 진입하니, 통행을 저지하려던 경찰 차량이 우리가 구호품을 실은 상태임을 감지하고, 또한 아무도 원조활동을 하지 않는 지역에서 사역하는 것을 믿어주고 우리 차량에 ‘긴급 구호 차량’이란 스티커를 달아주었다. 이 티켓을 가지면 어떤 길도 통과가 되며, 주유소에서는 기다리지 않고 무제한 주유를 할 수 있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목적지인 이와키시에 내리자마자 10여 곳의 주유소를 발견했으나 모두 문은 닫혀 있었고 오직 한 곳에서만 수백 대의 차량이 줄서 있었다. 구호물품을 실은 우리 차량은 비상램프를 켜고 아주 당당하게 최우선으로 주유를 했다. 할렐루야를 외쳤다. 이와키시는 인구 34만 명의 도시로 이번 재난 지역 가운데 가장 복구가 느리고, 유통이 제일 안 되며 시민생활이 마비된 도시로 지적받은 곳이다.
나고소그리스도복음교회의 스미요시 에이지 목사 부부. 평소에 조용하시던 분이 목멘 큰 소리로 교회와 전도사역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잘 왔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밀려 왔다. 쓰나미로 강물이 넘쳐서 예배당 현관까지 물이 찼고, 예배당 벽과 강대상 옆벽이 여기저기 금이 갔지만, 교회는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지역주민들을 더 적극적으로 섬겨야 한다며 물건 하나하나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가 가져간 라면, 귤, 마스크, 양말, 등유 등 모든 것이 필요했다며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이곳까지 찾아와 준 한국 교회와 한국 선교사는 고마운 동역자라고 기뻐하셨다.
저녁에는 함께 뜨겁게 기도하니, 형제가 울고 있을 때에 함께 울어주는 형제가 있다는 것에 큰 위로를 받았다(롬12;15). 그리고 이 재난의 지역에서 자동차도 전철도 모든 이동수단이 단절된 상태에서 집은 여기저기 파손이 되고 물도 나오지 않으니 동경 근처의 아들집으로 데려다 달라는 78세 오기하라상 부부를 지바의 아들집으로 피난하시는 데 우리 차량이 사용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꼭 들러야 했던 곳은 히타치 히카리 교회(윤병갑 선교사)였다. 지진과 계속되는 여진으로 금이 가고, 유리창이 깨진 예배당 건물이 더 이상 손상을 입지 않도록 기도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성도들과 함께 지진도 방사성 물질 누출도 막아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히타치시는 일본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동해촌원자력발전소가 있는 곳이다. 또 벤츠일본공장이 있는 산업도시다. 이곳의 원전은 쓰나미 피해는 없었으나 자동차 공장은 쓰나미로 수출 및 내수 판매를 앞둔 수천대의 차량이 주차장에서 크게 불타는 일이 있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언제나 함께하신다는 확신과 긍휼의 사역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깊이 배우는 여정이었다. 현장으로 가서 함께 도우라고 응원해 주신 한국 교회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사진제공=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댓글 0